본문 바로가기
우리의 역사

조선의 사회 전반의 대한 내용

by wanibini 2024. 11. 3.
반응형

조선의 사회 전반의 대한 내용
조선과 현대의 사회

- 조선 사회의 전반

조선에서는 왕족, 양인, 천민의 구분이 있는 신분제 사회였었다. 조선의 공식적 신분제는 양인과 천민만을 구분하는 양천제였으나 실제로는 양반, 중인, 양인, 천민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신분제는 세부 신분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없고 각자가 맡은 직업인 직역이 고정되어 있던 것도 아니란 점에서 이웃한 일본의 신분제와는 많이 달랐었고, 실제로 별다른 신분의 구분이 없었던 중국의 제도와도 많이 달랐다. 조선의 신분제는 명시적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으나 관습적으로 작동하는 많은 제도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양반은 세대를 거듭하여 관료를 담당함으로써 스스로 특권화 된 계층으로 혼인, 학연 등을 기반으로 다른 계층과 구분되는 사회 계급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중인은 지반의 향리를 비롯하여 의원, 역관 등의 기술직에 종사하는 계층으로 이들의 신분 상승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양인은 주로 농사에 종사하였으며 각종 세금의 징수, 국가 노역의 동원, 병역의 부담 등을 떠안았다. 조선의 전민은 전대인 고려 시기의 향, 소, 부곡 등의 경우와 달리 지역 전체가 천민으로 지정되는 경우는 없었으나 여전히 사회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관청에 소속된 관노나 개인의 종으로 부려진 사노비와 같은 노비, 백정과 같은 특수한 직업을 지닌 사람, 남사당과 같은 재인 등이 천민에 속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분의 구분의 갑오경장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혁파되었으나 사회의 차별은 20세기 초까지도 남아 있게 되었다.

 

결혼과 가족의 구성에서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으나 재력이 있는 남성의 경우에는 첩을 두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결혼은 개인 간의 결합이라기 보다는 가문의 결합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아내는 오직 한 명만 인정되었으며 중혼 할 경우 처벌받았지만, 첩의 경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이 없게 되었다. 양반의 경우 결혼은 인생의 주요 통과의례인 관혼상제 가운데 하나였으며 가문이 결정한 바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첩을 들이는 것에 대해 남성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초기에는 본처가 새로 들인 천민 출신의 첩을 살해하는 등 양반 여성의 저항도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중기인 중종 시기 국가의 강력한 개입으로 이런 행위가 처벌되기 시작하면서 처의 반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도록 되어졌다. 첩은 양인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관기와 같은 천민을 맞이하고 면천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조선은 종모법으로 어머니의 신분이 자식에게 대물림 되어졌기 때문에 천민 여성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천민으로 등록되어 졌는데 처에게서 태어난 적자와 첩에게서 태어난 서자 사이에는 차별이 많이 존재하게 되었다. 첩이 천민일 경우 자식도 천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남에 적서차별은 조선시대 양반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폐단이 끊이 없이 거론되었지만 결국 잔재하게 되면서 많은 단점들을 야기하게 되었다. 

 

한 사회의 생활 양식 전반을 일컫는 개념으로 조선 역시 의식주를 비롯한 사회 여러 분야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조선의 문화 가운데 상당수는 오늘날 한국 문화의 바탕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이웃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래로 계속하여 서로 교류하는 등 상당한 문화적 유사성을 보이게 되면서 각자 독자적인 발전을 통한 독특한 문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현재 한복의 모습은 조선 후기에 정형화 된 것 중에 하나로 조선의 의복은 철릭의 경우와 같이 같은 형태의 옷이라도 시기에 따라 차츰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한식의 경우 보다 다양한 요소들의 혼합과 시도 등으로 눈부시게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고추와 같은 외래 향신료가 새로히 선보이면서 김치 역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전통적인 주거 공간인 한옥은 지역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여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이 긴 중부 및 북부의 한옥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집을 짓는 매우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더운 여름이 긴 남부의 한옥은 일자 모양으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개방적인 구조에 너른 마루를 만들게 되었다.

 

- 조선 사회의 관계

 

사회적 관계의 변화나 경제의 변화 역시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면서 시를 짓고 문집을 만드는 일은 조선 초기와 중기까지 주로 양반의 문화였었으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양민들이나 천민들도 문화 활동을 시작하게 되어갔다. 서강이 일반화되면서 서민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한글 소설 등이 널리 유행하면서 독자층도 늘었기 때문에 탈춤, 판소리 등 새로운 문화는 서민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하게 되면서 양반들의 것과는 많이 다른 서민들의 자연스런 바램을 현실적인 마음을 담게 되었다.

조선은 각종 절기와 명절에 따른 세시풍속도 많이 지니고 있었는데, 설날, 정월대보름, 혹은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의 절기에 따라 여러 가지 놀이도 함께 즐기게 되었고 몇몇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주요 풍속으로 남아 있어 현대에도 함께 즐기는 명절 놀이로 자리잡게 되었다. 

 

반응형

'우리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 사회의 성립  (0) 2024.11.04
고려의 건국의 대한 역사 이야기  (0) 2024.11.03
조선의 군사, 병력  (0) 2024.11.03
조선 후기, 전반적인 정치  (0) 2024.10.31
조선의 정치, 유교, 계층, 국호  (0) 2024.10.31